퇴사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았다. 진작에 퇴사를 고민했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알리지 않고 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 퇴사하겠다는 말을 했다. 몇 번의 회유 끝에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노라 딱 잘라 말했고, 이후 퇴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남은휴가를 계산해보니 출근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친하게 지낸 사람도 없었기에 아쉬움도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간단한 선물이라도 주며 잘 마무리 지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미리 갯수를 파악하고, 선물을 주문했다. 깔끔하게 마무리 짓겠어.
이 회사는 마치 파견직인듯 시작해서 그 흔한 회식 한번 하지 않고, 파견직을 마무리하는 듯 끝이났다. 그래서인지 짐도 많지 않았고, 며칠을 걸렸을 자리 정리를 하루만에 끝냈다. 또, 으레 느끼는 시원섭섭함 대신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조금 일찍 퇴근하는 길 건물을 나오자마자 소리 지르고 싶었다. 얏호! 오예! 예쓰! 아싸!
그러지는 못하고 대신 이 시간에 전화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모두다 일하는 시간, 몇 안되는 편하게 연락가능한 사람 중에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동생.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나 전화를 받는다. 나 퇴근해. 오예! 유후! 드디어 퇴사다! 나 진짜 시원섭섭이 아니라 홀가분해. 후련해! 신난다 예! 동생은 묵묵히 듣고 나는 신남을 마구 표현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일단 여기까지. 집에가면 더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리라.
퇴사는 실감나지 않는데 내일 그 갑갑한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그냥 기분이 좋다. 싱글벙글.
의욕을 상실하는 곳. 지치는 곳. 기운빠지는 곳. 가기 싫은 곳.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어깨춤이 절로 덩실덩실이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이제껏 그렇게 망설이고 참아냈을까.. 다른 길을 찾을 기운도 잃은채 하루하루를 보낸 시간이 아까웠지만 지금이라도 떨쳐내고 나와 다행이다. 모임에서는 나의 용기를 응원해주었고, 새로운 시작에 박수를 보냈다.
숨을 고르는 시간. 이 시간을 숨이 차지 않게 보내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다.
시간이 많다고 여유롭지 않고, 시간이 없다고 허덕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간을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